[은찬가람ts/찬가람ts] 사춘가 2

2015. 2. 2

[은찬가람ts/찬가람ts] 사춘가 2

 

* Ts주의

* 소재와 묘사 주의!

 

 

 

 

청가람이 보고 싶었다. 다섯 번째 소주 병을 까다가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서? 싶었다. 이렇게 갑자기? 사실 그랬다. 청가람하곤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우리에겐 접점이란 없었다. 아,  하나 있었다. 우리가 우연히 짝꿍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한 달이 넘도록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는 게 우리 사이의 전부였다.

말이라도 한 번 제대로 나눠봤으면 몰라, 보고 싶긴 왜 보고 싶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또 소주를 연거푸 마셨고, 그렇게 취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환한 대낮이었다. 어차피 지각인 거 라면이나 먹고 가자 싶어 비적거리며 거실로 나갔다. 느릿느릿 라면을 끓여서 텔레비전까지 보면서 그렇게 여유롭게 해장을 했다. 어느새 열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학교에 가기엔 참으로 늦은 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렇게 술을 진탕 퍼마신 다음날이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애당초 제게 있어서 학교를 제끼는 일 따윈 예삿일도 아니었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숙취로 학교에 가기 싫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운동화가 젖어서, 흐린 날이면 기분이 안 좋아서, 또 어떤 날은 교복 셔츠 단추가 떨어지는 바람에 기분이 상했다는 별 쓸모없는 말들로 땡땡이를 치곤했다. 그런데 오늘은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학교에 가서 청가람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혀를 닦다가 목젖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토할 뻔했다. 한참을 캑캑거리는데 온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역시 학교에 가지 말까. 바닥에 침을 뱉으며 고민하다 결국 샤워를 했다. 오늘은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서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보자 싶었다. 청가람은 뭐라고 대답할까? 웃을까? 욕할까? 역시 무시하려나? 대충 머리를 말리고 교복 마이도 걸치지 않은 채로 털레털레 문밖으로 나섰다. 내리쬐는 태양이 뜨겁다. 곧 여름이다.


청가람은 한 마리 고슴도치였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가시를 삐죽삐죽 세우며 시종일관 무표정이거나 화난 얼굴, 이 둘 중에 하나였다. 아, 삐친 얼굴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청가람은 평판이 좋지 않았다. 덩달아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짝이 되었을 땐 아아, 역시 그렇구나. 생각했다. 그렇구나.

당연히 친구가 안 될 청가람. 친구가 생기면 안 되는 주은찬. 역시 그랬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조합일 수가 없었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청가람이라면 절대로 내 친구가 될 수 없을 테지. 뭣보다 여자애고, 여자애였고, 여자애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여자애들이 싫어하는 양아치였다. 뭐, 좋아하는 애들은 좋아하겠지만. 별로 선호하는 타입은 아닐지도 모르지.

늦게 등교한 보람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후라 그런지 교문에는 선도부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운동장을 유유히 가로지르며 천천히 교실로 향했다.

수업이 한창인 복도는 조용했다. 딱히 발소리를 죽여가며 걸을 필요도 느끼지 않아 터벅터벅 소리 내서 걸었다. 제 발에 덧 씌인 운동화가 찌걱이며 소란스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그대로 교실로 들어갈까 싶었지만 수업 중인 교실로 들어가 이목을 받고 싶진 않았다. 역시 쉬는 시간에 몰래 들어갈까. 수업이 끝나기까진 이십분 남짓의 시간이 있었다. 이 정도면 담배 한 개비 정도는, 아니 서너 개는 거드름까지 떨어가며 필 수 있으리라.

그래, 담배를 피자. 싶어 발을 돌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소각장에서 그렇게 담배를 피웠다. 한 개비를 태우며 청가람을 생각했다. 뭐라고 말을 걸면 좋을까. 인사를 건네는 게 좋을까, 인사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지 않나? 그러는 사이 담배 하나가 연기로 사라졌다. 하나를 더 필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담배를 밟아 비비며 문뜩 깨달았다. 담배 냄새 날텐데, 하고. 생각해보면 늘상 그래왔는데,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새삼스레 깔끔을 떨고 있는 자신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교실로 들어가기 전, 사라지지 않을 담배 냄새를 없애보겠다고 화장실로 들어가 수선을 피웠다. 물로 몇 번이고 입안을 헹궈내고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냄새를 확인했다. 음,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기도 해. 그런데 냄새가 나면 어떡하지.


나한테서 냄새나?


청가람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썹을 가볍게 찡그렸고, 세차게 눈을 깜빡였다. 그 탓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서로 엉겨 붙었다 떨어진다. 그 눈을 보면서 나는 문뜩 손이 잡고 싶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내가 말을 건 그 다음날 나는 청가람의 손을 잡았다. 보고 있으니까 손이 잡고 싶었다. 청가람은 손을 빼지 않았다. 제 위에 덮인 내 손을 쳐내지도 않았다. 그저 내 손을 한 번, 내 얼굴을 한 번, 그리고 손을 또 한 번.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바라봤던 거 같다.

그날은 해지기 무섭게 또 술을 마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취기가 올라 정신이 몽롱해졌다. 이미 제 옆에선 짝을 지어 물고 빠느라 정신없는 이들 투성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그냥 주구장창 술만 부어라 마셔라 해댔다. 그 사이 제 옷 속으로 파고든 손이 정신없이 몸을 기어가고 있었다.

가슴팍에 올려진 그 손등에 제 손을 겹쳐보았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을 겹치고, 입을 맞추고, 몸을 겹쳐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지?

청가람은 보고 있으니까 손이 잡고 싶었고, 손을 잡으니 입을 맞추고 싶었는데 말이야. 한 번 말을 걸기 시작하니 자꾸만 쓸데없는 걸로 말꼬리를 잡아 대화를 늘어트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을 두 번, 두 번을 세 번으로 만들고 싶었다.

청가람.

왜.

그냥 부르고 싶어서.

이런 쓸데없는 부름에도 청가람은 항상 나를 쳐다보고 대답해준다. 하잘 것 없다는 걸 빤히 알고 있을 텐데도 청가람은 매번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쳐준다.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손이 잡고 싶었고, 손을 잡으니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청가람에게 입을 맞췄다. 고개를 뺀다거나, 뺨을 때리진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면 정강이가 불이 날 정도로 채인다거나, 그런 걸 생각했는데 청가람은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연약하게 떨리는 눈꺼풀이 애처롭다.

한참의 입맞춤 뒤에 입술을 뗀 청가람의 이마가 찌푸려져 있었다. 그 모습에 그만 나는 또 바보같이

나한테서 냄새나?

물었다. 청가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청가람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온종일 청가람의 얼굴이 내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술을 마셔도 머릿속엔 온통 청가람뿐이었다. 담배를 피워도 생각이 났다. 담배도 결국엔 반도 피우지 않고 버려버렸다.

옆자리에서 들러붙던 여자애와도, 그 옆에 앉아있던 다른 애도, 아무튼 그 방안에 있던 모든 여자애들과 뽀뽀를 해도 청가람이 생각이 났다. 섹스를 해도 아무런 감흥도 나지 않았다. 자꾸만 내 위에 올라탄 여자애 얼굴로 청가람이 겹쳐 보였다.

청가람은,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소리를 낼까? 나를, 어떻게 불러줄까?

그래서 다음날 나는 청가람하고 잤다. 더 정확히는 섹스를 했다. 청가람은 얼굴이 발갛게 되었고, 신음 대신 숨소리만 내었다. 그리고 그 숨죽인 목소리로 아프다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눈을 핥자, 주은찬, 하고 나를 불러주었다. 청가람의 눈물이 혀를 타고 올라온다. 입안에 짠맛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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