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백건/현백/현건] 애견(?)일기 4

[현우+백건/현백/현건] 애견(?)일기 4

 


"문 닫고 싸라, 미친놈아."

"보기 싫으면 그쪽에서 닫아주시던가요."

시발, 또 시작이다. 건은 신경질적으로 숟가락을 식탁 위에 내던지며 화장실로 향했다. 유리와 부딪치는 쇠수저의 날카로운 소리가 매섭게 공중을 가른다. 그 소리에 맞춰 어느새 볼일을 끝마친 모양인지, 현우는 보란 듯이 제 발을 사뿐히 튕겨가며 유유히 화장실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뒤에 남은 건 화장실 바닥에 들러붙은 누루 죽죽한 얼룩, 그리고 깊은 지린내였다. 건은 신경질적으로 수화기의 물을 틀었다.

배변훈련만큼은 확실하게 잘 시켰지, 싶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그나마 덜 고생하는 게 아닌가. 다리 건너 귀동냥으로 익혀온 잡다한 훈육법으로 인해 현우는 그나마 괜찮게 배변훈련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아닌지라 때를 가릴 줄 모른다는 것이 큰 허점이었다. 말하자면 건이 이렇게 밥을 먹고 있을 때도 현우는 가라지 않고 배변을 보았다. 오늘같이 소변이면 다행이지만 큰 것(?)이라도 보는 날이면 왕성했던 식욕도 세찬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지기 마련이었다.

"제발 부탁이니까 사람이 밥 먹을 땐 좀 참으면 안 되냐?"

"어떻게 참습니까?"

"그냥 좀 참아."

"싫습니다."

"왜 싫은데."

"참으면 병나요."

제 말은 귓등으로 처 듣지 않는다. 제 말을 시원스럽게 말아먹은 현우는 이어 식탁 밑에서 와작와작 소리까지 내가며 밥을 축내고 있었다. 다시 식탁에 앉은 건의 바짓가랑이를 물어 고기반찬을 뜯어가는 것은 덤.

그래, 화장실에다 싸는 것만 해도 어디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건은 다시 수저를 쥐었다. 목구멍 뒤로 넘어가는 밥맛이 쓰다.


 

지금에야 현우가 장소를 봐가며 볼일을 본다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건의 눈에는 영락없는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으나 현우 역시 실상은 보통의 개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그냥 개였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보통의 개들이 그러하듯 사방팔방 가리지 않고 영역표시를 하는 행위 또한 현우에게 있어선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나 다름없었다.

제 방에 커다랗고 노란 물웅덩이를 만들어놓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엄마가 아끼는 가구에 오줌을 갈궈놓는다던가, 현관 앞에 멋대로 똥을 싸버리는 바람에 누나의 구두 굽에 박혔다던가 하는 일은 이미 일상처럼 다뤄지고 있었다.

"저놈의 개, 내다 버려."

"그깟 가구에 오줌 한 번 싼 거 갖고 쩨쩨하게 굴기는. 닦으면 되잖아."

"그깟 가구?"

"그래. 엄마 옷장도 많잖아. 한두 개도 아니면서. 쩨쩨하게 굴지 마."

"..."

"엄마는 뭐 왕년에 이불에 오줌 한 번도 안 싸본 것처럼, 왜 그래?"

"…나가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대문 밖에 서 있었다. 왼손에는 휴대폰, 그리고 오른손에는 현우의 목줄이 쥐어진 상태로.

그날도 어김없이 현우는 엄마의 옷장에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새하얀 가구에 보기 좋게 제 흔적을 남긴 현우를 보며 엄마는 얼마간 굳어 있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큰 소리 한 번 내는 일 없이 그녀는 발끝으로 조용히 현우를 밀어냈다. 얼룩을 바라보다 현우의 얼굴을 한 번, 가구를 바라보다 그 얼굴을 또 한 번 그렇게 반복해서 들여다보던 엄마는 결심한 듯 건을 향해 외쳤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엄마도 처음부터 둘을 내쫓을 생각으로 불렀던 건 아니었겠지. 하지만 보란 듯이 제가 엄마의 화에 기름을 들이 부은 셈이었다.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버렸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말대답하지 말걸.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이제 어디로 가냐."

아무래도 들끓는 화가 가라앉으려면 한참 걸리겠지 싶어, 우선은 공원을 배회하기로 했다. 제 속도 모른 채 현우는 제 팔을 꼬고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그 엉덩이가 무거웠다. 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은 채 좀체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 끌고 가기가 버거웠다. 한창 씨름하듯 목줄을 끌다, 어르고 달래가면서 어찌어찌 공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하기 전에 이미 깊이 몸씨름을 한 탓에 건은 묵직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벤치에 주저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연신 쓸었다. 아, 정말 지친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공원에 도착하기 전에는 그렇게 무거운 쇳덩어리 같던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치근덕거리는 게 아닌가.

"여긴 어딥니까!"

"보면 모르냐, 공원이지."

"좋은 냄새가 납니다! 저쪽으로 가요!!"

되도 않는 냄새 타령을 해가며 제멋대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문 앞에선 무슨 도살장 끌려가는 돼지 새끼처럼 그렇게 엉덩이 무겁게 굴었던 주제에, 이젠 제가 나서 사방팔방 쏘다니기 시작한다.

지친다…. 계절을 대변하듯 공원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꽃들 틈바구니로 어느샌가 현우는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제 눈에야 다 큰 사내 녀석이 꽃 위를 구르고 있는 모양새였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평범한 한 마리 개가 날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거라며 건은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사실이 그러했으니까.

목줄까지 풀어준 채로 건은 넋 놓고 그런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대충 뻐팅기다가 집에 들어가야지, 해질녘쯤이면 엄마도 화가 풀릴 테고.

허나 시간을 때우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눈치 없이 이 상황에서도 허기를 호소해오는 제 배가 문제였다. 갑작스레 쫓겨나는 바람에 지갑도 챙겨 나오지 못했다. 있는 거라곤 저놈의 개, 날뛰는 저 한 마리 개, 그리고 개가 전부였다.

갑작스레 짜증이 치솟기 시작했다. 주말이랍시고 전날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 잔 어제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말대꾸를 한 방금 전의 자신도 화가 났고, 배가 고픈 지금의 저에게도 화가 났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현우에게도. 건의 마음에서 쏘아진 그 화살은 온전히 현우의 몫이었다.

"너 대체 가구에는 왜 그렇게 오줌을 싸는 거냐?"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니까. 안방에 들어가서 왜 그렇게 오줌을 싸냐고."

"그야. 제 구역이니까요."

"거기가 왜 네 구역인데."

"제 집이잖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오줌을 싼다?"

현우는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건은 갑자기 고통이 밀려오는 것만 같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잘 들어. 볼일은 화장실에서 봐."

"화장실이 뭡니까?"

"그 제일 안쪽에 있는…암튼. 그…마려우면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서 싸라고."

"왜 거기서 싸야합니까?"

"몰라서 물어?"

아차 싶었다. 현우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단 얼굴로 지긋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은 다시 한 번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몸만 다 큰 어른이었지,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강아지다. 그것도 태어난 지 4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은 개.

"생각해 봐."

건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선 차근차근히 설명키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현우가 제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지 미지수였지만.

"뭘 말입니까."

"싸고 싶다고 아무 데나 싸면 집이 어떻게 되겠어."

"똥밭이 되겠죠."

"그래! 그럼 더럽겠지?"

"네."

"그러니까 볼일은 화장실에서 보는 거야. 알겠어?"

"그렇지만 더러울 땐 치우면 되잖아요."

아…. 맞는 말이다. 그렇지, 똥을 싸고 오줌을 싸면 더러워지기 전에 치우면 될 일이었다.

"그래. 치우면 되지만 이왕이면 화장실에 싸면 좋잖아."

"어차피 똑같이 치우는 건데 왜 거기에만 싸야합니까?"

"거기가 볼 일을 보는 장소니까!!"

"그럼 이제부터 안방을 화장실로 하면 되잖아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건은 설명하기를 그만두었다. 도무지 상식이라는 게 통하지 않았다.

"남의 집 개들은 말 안 해도 잘 본다던데…이 놈의 개새끼는."

수확이라곤 없었다. 아, 나름대로 있다면 있지. 강한 두통이 건에게 남았으니 말이다.

지독한 두통과 허기와 싸워가며 건은 끈질기게 저녁까지 공원에서 버텼다. 예상대로 다툼에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기에 엄마의 화는 거짓말처럼 녹아있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잘못의 앙금은 남아있던 모양인지 거실 한편에 이상한 철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현우는 그곳에 가뒀다.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었지만, 별다른 반항도 보이지 않은 채로 현우는 철망 안에서 연거푸 하품을 내뱉고 있었기에 건은 걱정을 접었다. 문제는 저녁 식사 이후에 찾아온 누나였다.

"정말 너무한 거 같아."

"뭐가."

엄마 앞에선 말 한마디 못하던 누나가 투덜대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침대 위에 늘어져 있던 건의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누나는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 이제 막판이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게임을 끄며 건은 몸을 일으켜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누나의 말은 그거였다. 조그만 강아지(?)가 저질러봤자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저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건은 속으로 "누나, 그 가구가 얼마짜리인지는 알고 있지?"라고 되물으려다 이내 입을 다물기로 맘먹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무슨 조치?"

"인터넷에 보니까 강아지들도 훈련이라는 게 필요하대."

"그래서?"

"그래서는? 건이 네가 교육시켜야지!"

"뭐?"

뒷말은 듣지도 않은 채 누나는 부탁한다는 말만은 남겨둔 채로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 집으로 택배가 들이닥쳤다. 부피도, 무게도 엄청난 그 안에는 온통 강아지 관련 서적뿐이었다.

물론 현우는 여전히 현관 옆 철창신세였다. 제가 갇힌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그 여유로운 면상을 보며 건은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려는 짜증을 참아야만 했다.

"넌 거기가 편하냐?"

"뭐, 나쁘지는 않네요."

"안 나오고 싶어?"

"그렇게 물어보니 조금 나가고 싶은 거 같기도 하고."

사태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철장 안 여기저기에 멋대로 저질러놓은 똥들을 보며 건은 이마를 매만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모양이다, 손끝에 닿는 미간이 딱딱했다.

천하의 태평한 녀석…

본인이 불편치 않더라도 보는 입장에선 껄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누나의 잔소리가 귀찮았기에 건은 현우를 교육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첫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그러니까, 저 많은 책을 다 읽는 것은 건에게 있어 너무…무리였다.

책상 위에 쌓인 책들을 보며 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꼭 이걸 다 읽어야 해? 읽을 필요 없지 않나, 컴퓨터로 검색해봐도 될텐데. 아무튼 누나는 유난이야.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일단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배변훈련법뿐이니까, 대충 목차를 살펴 페이지를 찾는다.

개의 배변 책임은 견주에게 있다! 첫 문장부터 질책이다. 아, 예. 건은 심드렁하게 뒷 문장을 읽었다.

'아무리 개가 사람 눈치를 잘 보고 말을 알아듣는다지만, 그래도 개는 엄연히 동물이지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아기라고 생각해주세요~'

저렇게 다 큰 애기가 있어? 징그럽다.

'개가 애먼 곳에 똥오줌을 싸서 화가 나시나요? 그건 개의 잘못이 아닙니다! 집안에서 키우는 개의 배변 책임은 전적으로 견주에게 있습니다!'

지가 멋대로 싸재끼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더럽히지 않고자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땐 이해가 잘 안되시겠지요?'

더럽히지 않으려는 녀석이 사방팔방 똥을 싸재낄 리가 없잖아. 이 책 엉터리 아냐?! 건은 신경질적으로 책을 소리나게 덮었다. 탁! 닫히는 소리, 그와 동시에 거실에서 와장창 하면서 철망의 시끄러운 잡음이 울려 펴졌다.

황급히 거실로 뛰어나가 보니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펜스, 그리고 한쪽에서 제 머리를 긁고 있는 현우가 눈에 들어왔다. 사방팔방으로 내팽개쳐진 펜스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두 번 사이 쓸 일은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펜스 한 쪽을 들고 황망히 서 있는 건을 보며 현우는 하품을 한 번, 그리고 유유히 그 뒤를 지나쳐 화장실로 향했다.

"너 뭐하는…"

"화장실가는데요."

"뭐?"

보란 듯이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제 다리를 털며 나온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건을 바라본다. 뭐, 뭐지. 잠깐만 기다려보라며 건은 황급히 제가 읽던 책의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배변을 보고 난 후… 여기 있다. 배변에 성공하면 즉시 사료 알갱이와 함께 칭찬으로 보상해줍니다.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말로 칭찬하는 건 큰 효과가 없습니다.

아, 간식? 그치만 설마? 싶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누가 그랬지.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말 한번 참 잘 지었다.

거실로 나가자 현우는 여즉 그 상태로 자리에 앉아 뚫어져라 저만 바라보고 있다. 역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길 바라는 걸까? 건과 현우, 그 둘은 한참동안이나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 간식?"

"뭔 소립니까?"

"아니. 아니면 말고."

"화장실에다 볼일 봤다구요."

"어, 그래. 나도 봤어."

"됐습니까?"

"어, 그래. 잘했다."

건의 그 말에 현우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콧방귀를 낀다. 누가보면 세상을 호령한 장수인 줄 알겠다. 이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다시 드러누워 잠을 자기 시작한다. 사방파방으로 어질러진 펜스를 치우며 건은, 오늘은 군말 없이 고기반찬을 줘야겠다. 고 다짐했다.

현우가 제 볼일을 본 건 한순간의 기우에 불과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뒤로도 곧잘 잘 지켰다. 엄마의 가구에 실수를 하는 일도, 현관에 볼일을 보는 것도, 제 방에 웅덩이를 만드는 일도 줄었지만 역시 큰 문제는….


"아, 시발 진짜!"

"마려운 걸 그럼 어떡합니까!?"

역시 밥 먹을 때 볼일 보는 건 좀 참아줬으면. 냄새가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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