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찬가람ts/찬가람ts] 사춘가
Ts주의
소재주의!
주은찬이랑 잤다. 그러니까 섹스를 했다. 주은찬은 처음이 아니었고 나는 처음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지금 생리를 두달 째 하지 않고 있고 아무래도 이건 임신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주은찬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고민중이다.
나 니 애가졌다. 이건 좀 너무 삭막한데. 같이 병원에라도 가자고 해야하는 걸까? 그전에 같이 가주기나 할까? 첫 섹스 이후엔 주은찬이랑 세 번을 더 잤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주은찬은 나보고 사귀자고도 좋아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잤다. 우연히 손이 겹쳤고, 손이 겹치니까 입술도 겹치게 되고, 그러면서 몸도 겹친거지. 뭐.
첫 섹스 때 주은찬은 내 가슴을 만지고 웃었다. 뭘 웃어? 저릿한 아픔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나를 보며 주은찬은 웃고 있었다. 아니, 생각보다 가슴이 커서. 나는 기가차서 웃음만 나왔고 배가 아팠고, 주은찬이 들어간 아랫입이 너무도 쓰리고 아파저도 모르게 애마냥 칭얼대면서 울었다. 아파, 아프다고 미친놈아!! 주은찬은 그저 실실 웃고 있었다. 그게 첫 섹스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 모텔방에 있던 더럽게 맛없던 오렌지쥬스도 추가. 정말 맛이 없었다.
첫섹스가 어처구니없게 이뤄졌던 것처럼 두번째도 그랬다. 일주일이 넘도록 학교에 나오지 않던 주은찬을 나는 골목을 지나치며 우연히 마주쳤고 홀리듯 집으로 따라가 잤다. 주은찬은 골목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똥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고 마침 나는 우연찮게 그 골목을 지나가던 참이었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목이 다 늘어난 흰 티에 무릎이 툭 튀어나온 회색 츄리닝, 전형적인 백수같은 차림새로 주은찬은 날 보며 웃었다. 빙구같았다.
어디가? 청가람? 학교?
너 바보냐? 다섯 시에 학교가는 미친년이 어디 있어.
여기 있네.
미친놈.
덕구야. 누나가 너보고 미친놈이래.
개 앞발을 들어선 눈 앞에서 흔들여보인다. 그런 주은찬을 보며 개새끼는 혓바닥을 내민 채로 헥헥대고 있었다. 눈꼴시려 미간을 찌풀거린 채로 짝다리를 서는데 갑자기 발목을 확 채는 힘이 느껴졌다. 주은찬의 손이었다. 이 미친! 소리치기 무섭게 주은찬이 먼저 입을 막아왔다. 뭐, 처음 할 때 너무 많이 입을 맞춰서 셀 수는 없지만 암튼 그냥 통 털어서 두번째 키스라도 치자.
아무튼 그래서 주은찬하고 나는 두번째 키스를 하고 잤다. 무드없게도 두번째 키스 뒤에 주은찬이 한 말은 우리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에서 나는 라면과 흰 우유를 샀고 주은찬은 콘돔을 샀었다.
세번째는 학교 뒤 소각장이었다. 쓰레기통을 버리던 중에 또 주은찬이 먼저 키스를 해왔다. 별 수 있나. 나는 눈을 감았고 주은찬은 내 블라우스를 헤집으며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 속옷을 보며 웃었다. 분홍색? 귀엽네.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검은색이던 주은찬의 팬티가 기억에 남았다. 어울리지도 않게, 어른인 척 하는 어수룩한 검은색 드로즈가. 그게 끝이 아니었고 그 뒤로 두어번을 더 잤다.
섹스도 하고 키스고 하고 손도 잡았지만 우리는 뭣도 아닌 사이았다. 애인도, 하다못해 친구도 아니었다. 누가봐도 타인인 우리둘은 종종 그렇게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추고 몸을 나누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무슨 얼굴로 주은찬을 봐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건 주은찬도 마찬가지겠지.
하다못해 친구라던가, 섹파라던가 그런 상투적이고 저열한 표현이라도 붙일 수 있었다면 그나마 좀 나았을텐데. 서로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욕구의 해소을 위해 만남을 가진 거라면 차라리 낫지.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저를 부르자 주은찬은 생각치도 못했단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 청가람 니가 날? 그래, 멍청아. 주은찬과 나를 번갈아보던 주은찬 무리들은 이내 눈치보듯 우리 둘만을 남겨둔 채로 떠나갔다. 나는 입을 꾹 다문채로 어떻게 말을 시작할지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뭐라고 한단 말인가. 자꾸만 아랫배가 저리고 욱씬거리는 게 마치 생리통 같았다. 그래, 차라리 생리통이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주은찬의 손이 배을 감싸고 있는 내 팔에 와 닿았다.
뿌리칠 새도 없이 손목을 쥐어온다. 그리고 이어 주은찬은, 나는, 우리는 키스를 했다. 섹스는 하지 않았다. 주은찬은 뒷머리만 긁적이며 한참을 입을 다문채로 서 있었다. 참을성이 동날 때로 동이 난 나는 입을 열었다.
주은찬, 나.
아니, 내가 먼저 말할게, 청가람.
주은찬이 입을 열었다. 시뻘건 머리만큼이나 뺨이, 귀가, 눈을 내리깐 통에 드러난 눈두덩이가 시뻘겠다. 그, 늦었지만. 나, 널. 좋아해. 뒤통수를 한 대 처 맞은 듯이 머리가 아려왔다. 멍했다. 윙윙거리는 소음이 더해지면서 더 혼란스러웠다. 주은찬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주은찬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한참을 병신마냥 말을 더듬던 나는 말했다.
니 애를 가졌어. 주은찬.
니 애를 가진 거 같아.
주은찬은 덜떨어진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이 초등학교 일학년 때 자꾸만 내 책상으로 힘없이 엎어지던 지진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때, 그 애 때문에 김칫국물을 온 몸에 뒤집어 쓴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한 수치심을 지금 제 눈 앞의 입을 꾹 다문 주은찬이 주고 있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렇게 흔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주은찬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묵에 자꾸만 입술이 바싹 마르고 질식할 것 처럼 숨이 막혀왔다. 이 숨막힐 것 같은 고요가, 너무도 싫었다.
차라리 평소처럼 아무 말이나 지껄여봐.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라도 떠들어대던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장난치는 거지? 하고 웃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 역시도 장난인 것 마냥 이 병신이 믿었네, 하고 비웃어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한참이 말이 없던 주은찬은 내가 내일 연락줄게. 라는 한마디 말만 남긴 채로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지막 말은 '들어가'였다. 그리고 삼일이 지나도록 연락은 오지도 가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연락두절이었다. 전원이 꺼져있음을 알리는 휴대폰을 집어던지며 나는 조금 울었다. 아주 쪼금, 그러니까 병아리 오줌만큼 조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삼 일간 나 역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학교에 갈 생각도, 어디 마땅히 가고 싶은 곳도 생각나지 않아 그냥 이불 속에만 있었다. 뜨끈한 장판에 등을 지지며 뱃속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에 대해 생각했다. 역시 지워야지? 하는 생각 반 그래도 어떻게 지우냐?! 하는 생각 반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잠이 들었을 때, 새벽 두 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놀랍게도 발신자는 주은찬이었다. 괘씸한 마음에 바로 받지는 않았다. 어디 언제까지 전화가 오나 두고보자는 심산이었다. 세번에 걸쳐 전화기가 울렸고 문자가 왔다.
제발 전화 좀 받아. 그 문자에 마지못해 전화를 받아주는 척,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한 껏 쌀쌀맞게 받는다고 받았는데 그게 잘 드러났을지는 모르겠다.
잠깐 나와 봐, 집 앞이야.
싫어.
나와 봐.
싫다고.
얼굴 좀 보자, 가람아.
내가 왜?
그럼 내가 들어가? 주은찬의 그 말엔 항복해야만 했다. 대충 외투를 껴입고 대문앞으로 나가자 여전히 헐렁한 츄리닝 차림새의 주은찬이 보였다.
뭔데, 빨리 말해. 나 금방 들어갈거야. 주은찬의 손엔 검은 봉다리가 들려있었다. 흔들거리는 검은 봉투를 뒤적거리며 주은찬은 뭔갈 열심히 설명했다. 이건 죽이고 일단 먹고, 이건 영양제인데 이걸 먹어야 둘 다 건강하대. 그리고 이건. 어이가 없어 콧웃음만 쳐졌다. 너 지금 뭐하자는 건데? 어? 너 지금 뭐하는 건데.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자 살살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러온다. 그러면서 주은찬은 내 손에 봉투을 넘겨주며 웃었다. 내일 다시 올게. 그 말만 남겨둔 채로 웃으며 사라졌다.
방으로 돌아와 식어빠진 죽을 먹고 약을 삼켰다. 죽은 형편없이 식어서 너무 차가웠다. 그렇지만 맛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다음날 정말로 주은찬은 우리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주은찬은 내 외투를 여며줬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손 잡을래? 하고 물어봤다.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았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빙빙 돌았다. 그저 돌았다. 딱히 갈 곳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버스를 탔고 계속 갈아탔다. 그러기를 수어번 반복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빙빙돌다 주은찬은 해가 지면 나를 집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인사를 했다. 들어가, 라고. 그렇게 손을 놓은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만나 다시 손을 잡았고 버스를 타며 빙빙 돌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도록 빙빙 돌며 버스만 타던 우리가 내려서 도착한 곳은 결국 병원이었다. 주은찬은 말이 없었다. 나도 담담했다. 안 담담해도 괜찮은 척 해야지 뭐 어쩌겠어. 그런 기분이었다.
주은찬은 병원에서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모양인지, 주은찬의 손바닥은 너무도 축축하고 차가웠다. 그치만 기분나쁘진 않았다. 나는 주은찬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갔고 초음파실에 갔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주은찬은 울고 있었다.
야, 뭘 울어. 미간을 또 잔뜩 찌푸린 나를 보며 주은찬이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날 껴안았다.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으로 나도 주은찬을 껴안고 아주 조금 울었던 거 같다. 그 뒤로 주은찬과 다섯 번의 키스를 더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3이 됐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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