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백건/현백/현건] 그림자

[현우+백건/현백/현건] 그림자


*au 주의!

*조금 분량이 초과하긴 했지만 / 멘션받은_커플링으로_낼맘은없는_동인지_한장_쓰기

*연성파레트 100제 인용 - "나도 알아, 내가 죽은 우리 형이랑 닮아서 네가 나랑 사귀어주는거."




어깨 위를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솜이불의 감촉에 눈을 떴다. 환해진 시야에 새하얗고 판판한 등을 지닌 뒷모습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 매끈한 몸의 정 가운데에 세로로 크게 그어진 커다란 흉을 눈동자로 더듬어본다. 시선의 종착지는 목덜미였다. 아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볼록 튀어나온 뼈로 만들어진 목덜미의 산을 무심한 눈길로 훑다, 현우는 다시 눈을 감는다. 어깨가 시렸기에 이불을 당겼다.

힘없이 끌려오는 솜이불과 달리 그는 여즉 뻣뻣하게 등을 보인 채로 거리가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어두운 사이로 침대가 덜컹였고 덩달아 몸이 작게 흔들렸다. 바닥을 짚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방바닥을 때리던 발소리가 빠지자 그 자리에 바스락거리는 옷가지의 소리가 차오른다. 망설임의 털끝도 보이지 않고 주저 없이 올려지는 지퍼 소리를 끝으로 현우는 눈을 뜬다. 어느샌가 말끔한 차림새로 백건이 제 눈앞에 서 있었다.

“나 간다.”

배웅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싶어, 현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대충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드로즈에 다리를 끼워 넣었다. 건은 그를 기다린다. 단단한 무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싶단 충동이 문득 일어, 현우는 농을 던졌다.

“모닝 키스라도 해주고 가시죠.”

자조적인 웃음을 얼굴에 올려내며 건이 내뱉었다. 질문도 대답도 아닌 모호한 음색의 언어였다. 우리가 모닝 키스까지 나눌 정도의 사이는 아니지 않나.

“그것도 그렇죠.”

이번엔 현우가 먼저 건에게 등을 내보인다. 한쪽 발에만 슬리퍼를 신은 채로 현관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묵직한 쇠문의 차가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환한 볕이 얼굴에 따갑게 내리쬐어 왔다. 눈부시게 환한 볕 사이로 뛰어들 듯 건은 날렵한 몸짓으로 어두운 방을 빠져나간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잘 가라는 인사말도 건네지 않은 채로 그는 문을 닫았다. 인사를 건네지 않은 것은 건 역시도 마찬가지였기에. 구태여 자질구레한 말들로 공존의 시간을 늘리고 싶진 않았다.

잿빛으로 물든 방안에서 현우는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힌다. 아직 피로에 젖은 눈꺼풀을 마른 손바닥으로 비비며 잠을 청해본다. 전력으로 저를 향해 달려오는 수마에 맞부딪쳐, 저항 한 번 표현할 길도 없이 그는 다시 한 번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꿈은 환한 낮이다. 아직 어린 그와 아직 앳된 건과 이제는 조숙해진 현오가 일렬로 나란히 자전거를 타던 여름날의 오후다. 그때도 그는 새하얀 건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굴러가는 바퀴의 덜컹거림도 더욱 거세진다. 조심해, 바람과 겹물려 부드럽게 저를 감싸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현우는 다시 한 번 세차게 페달을 밟는다. 일순, 앞서가던 건의 빳빳한 등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나동그라진다. 뒤는 저였다. 눈앞이 새까만 어둠에 젖었다 노란 빛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물기어린 목소리가 머리맡을 적셔온다.

“괜찮아?”

입술을 달싹여 괜찮다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현오가 거침없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끊임없이 쿵쿵거리며 울리는 큰 북이 들이찬 마냥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며 현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노란 시야 한 편으로 울고 있는 건과 덩달아 울상인 현오가 있었다. 현우는 무심한 눈길로 그 둘을 바라본다. 마음의 정중앙을 붉은 손톱이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갔기에, 패여진 가슴의 크나큰 상실감을 느끼면서 흙으로 더러워진 제 손바닥을 비벼 털어낸다. 흙으로 더러워진 건의 등을 털어주는 현오의 바지런한 손등을 꼬집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악몽은 아니었지만, 잠에서 달아나듯 황급히 눈을 뜨는 그의 발목을 꿈은 잡아 붙들어 맨다. 여즉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건과 새하얀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치는 저가 있다. 얼굴선이 투박하니 제법 굵직해졌지만, 아직 앳된 티를 씻어내지 못한 말간 볼을 지닌 저는 건을 향해 묻는다. 안 졸려? 건은 고개를 든다. 아니. 제 앞에 자리한 액자 속 검은 머리의 그만을 눈에 담은 채로 대답을 해온다. 현우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 대신 건의 뒷덜미를 끌어 입을 맞춘다. 커다란 동요 없이 끌려오는 몸을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탐했다. 떨어지는 제 등을 감싸 안는 그는 몇 번인가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지만, 굳이 들춰 지적하지도, 정정하지 않은 채로 현우는 입을 막았다.

우리는 밤낮없이 서로의 몸을 탐하고 섞었지만, 연인은 못 되었다. 우리 사이에 서로의 전희를 돋구기 위해 취하는 어쩔 수 없는 탐닉, 욕망의 근처를 더듬는 애무의 행위는 있었지만 그건 필시 사랑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우리 사이에 사랑이란 없었다. 크나큰 ‘연인’이라면 있었지만..

다시 눈을 뜬다.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연거푸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더는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피로로 물든 검은 머리의 사내를 현우는 노려본다. 거울 속의 저는 점점 더 인상이 파리해져, 그 옛날 젊은 날의 현오를 닮아가고 있었다. 눈꺼풀을 비벼, 세차게 비누칠을 해보지만 제 눈 밑에 자리 잡은 커다란 어둠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부정해봐도 저는 그와 닮았다.

도망치듯 화장실에 빠져나와 이불 속에 몸을 담는다. 머릿속의 큰 북이 여름날처럼 쿵쿵 울린다. 내 이름은 현오가 아니야, 하는 자조적인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알아, 내가 죽은 우리 형이랑 닮아서 네가 나랑 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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