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14

엘리스.aliceeli 2016. 5. 31. 18:49

[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14




체교과 조교 주은찬 x 기계체조하는 가람이 ts

*설정날조 주의!


14



가람은 문 옆에 바싹 붙어 서 있다. 은찬은 자연스럽게 가람을 향해 소파를 가리키며,

“아무 데나 편하게 앉아요.”

하더니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낯선 공간에 들어선 그녀의 어깨는 긴장감으로 인해 좀처럼 풀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등이 빳빳하게 굳어 있다. 티셔츠 밖으로 날개뼈가 선연히 도드라질 정도로.

단 둘뿐인 그 네모난 방은 몹시도 조용했기에 아주 작은 바스락거림도 고여있던 허공에 틈을 내기엔 충분했다. 잔음들이 공기를 소란스럽게 뒤흔들어댄다. 분주히 서랍을 열고 다는 소리, 곤충의 날개 비비는 듯한 종이의 바스락거림, 허공을 맴도는 빛가루의 반짝거림, 이따금 콧등에 내려앉는 먼지 보풀까지도.

“온 김에 차라도 마시고 갈래요?”

책장 너머로 고개를 조용히 내밀며 그가 물었다. 액자 하나 걸려있지 않아 휘휘한 벽을 넋 놓고 응시하던 그녀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 갑작스런 질문과 쏟아지는 그의 눈길에 가람은 어깨를 움츠렸고,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그를 응시했다.

“필요 없어요.”

“그럼 음료수라도 마셔요.”

볼멘소리를 툭툭 뱉는 그녀를 보면서도 그는 무심히 냉장고로 향했다. 음료수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준다.

“필요 없다니까요.”

그의 손으로 음료수를 밀쳐내며 그녀는 가지런한 눈썹을 삐죽였다. 은찬은 부드러운 곡선을 입술에 그려내며 음료수 뚜껑을 딸각 소리 내 비틀어 열었다. 그녀의 손에 다시 쥐여주며,

“이미 까버려서요. 마셔요.”

얄밉게 웃는다. 한술 더 떠 소파로 앉히며 “편하게 앉아서 먹어요.” 말한다. 엉겁결에 소파에 걸터앉은 형국으로 가람은 “필요없―” 다 말하려는데,

“아니면 서서 마시던가.”

그가 웃고는 책장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결국에는 엉덩이를 반쯤 소파에 걸치고 앉아버린 그녀는 손에 든 음료수병을 만지작거리며,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하며 그대로 망설이고 있었다. 유리병 안에 든 음료는 진한 개나리 빛을 자랑하는 오렌지 주스였다.

제멋대로라고 생각하면서 가람은 병 입구에 입술을 갖다 대길 거듭 망설인다. 혀를 내밀어 입술에 얇게 침을 바르면서 병 입구만을 노려보고 있다.

“오렌지 주스 별로 안 좋아해요?”

언제 나타난 걸까, 망설임으로 점칠 된 가람을 지켜보던 그가 물었다. 가람은 신경질적으로,

“남 이사 좋아하든 말든.”

평소보다 날이 서 높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거칠게 답한다. 짜증이 역력히 배어있는 목소리였다.

“다음엔 다른 거 주려고 그러죠.”

“다음은 무슨……, 필요 없거든요.”

“필요 없다, 필요 없다. 그 말밖에 할 줄 몰라요?”

부러 얄밉게 쏘아붙이는 그 목소리에 가람은 손에 든 음료수를 황급히 입가에 가져다 댄다. 성급하게 마시는 바람에 제대로 입안으로 흘러들지 못한 음료수가 턱을 적시곤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옷에 노란 꽃물이 들어버렸다. 평소처럼 어둑어둑한 무채색 티가 아닌 흰 티를 입고 있었기에 얼룩은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아도 눈에 띄었다. 미술시간 서툰 붓질로 옷에 커다란 얼룩을 남겨버린 초등학생처럼 난감해하던 모습도 잠시,

“짜증 나.”

애꿎은 음료수병에 화풀이하듯 신경질적으로 유리병을 테이블 위에 내리치듯 놓는다. 덕분에 유리와 유리가 맞부닥치며 쨍강하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급하게 먹으니까 옷에 묻죠.”

은찬은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휴지를 건네었지만, 가람은 또다시,

“필요―”

버릇처럼 ‘필요 없어’ 말하려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그녀를 보는 그의 눈이 반달처럼 곱게 휘어졌다. 그는 능글맞게 웃는다. 속셈 많은 동화 속 고양이처럼 얄밉기도 하다.

“또 필요 없다고 말하려고 그랬죠?”

“진짜 짜증 나.”

가람은 세차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릎을 일자로 곧게 펴고선 퍽퍽, 진흙을 짓뭉갤 때처럼 거친 발걸음으로 바닥을 찧으며 문으로 다가섰는데,

“저기요.”

하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몸을 불러 세웠다.

“또 왜요!”

바락 소리를 뿜는 그녀를 보며 은찬이 돌연 오른손을 내밀었다.

“약 가져가야죠.”

그의 손바닥 안엔 연고가 놓여 있었다. 가지런한 모양새가 새것임이 역력했다. 그녀가 머뭇거리듯 찌푸린 미간으로 제 손바닥만 노려보고 있었기에 그는,

“싫으면 말고.”

다시 손바닥을 쥐어 연고를 가리려는데 세찬 철썩임이 귓가를 두드려왔다. 그녀의 손이 그의 손바닥에 매섭게 달려들어 연고를 낚아채 간다.

“진짜 짜증 나!”

비명과 닮은 울컥하는 목소리가 먼저였고, 쿵! 하는 묵직한 문소리가 다음이었다. 

둔탁한 소리가 허공을 쿵, 쿵, 두드려댄다. 방에 홀로 남은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의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웃음이 났다. 그는 웃고, 웃다가, 문뜩,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문뜩.


*


세찬 발소리가 허공을 찢는다. 힘찬 발걸음으로 복도를 걷는 그녀의 뺨엔 붉은 물이 얼룩져있다. 달뜬 볼로 그녀는 신경질을 내다, 입술을 깨물며 따뜻한 숨을 내뱉다가, 걸음을 멈춘다. 손에 들려있는 연고만을 더듬고 있다.

“이상해……”

누구를 향한 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숨결만큼이나 매끄럽게 잇사이를 헤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작았지만, 복도를 적시기엔 충분했다. 그녀는 볼이 붉고, 숨이 뜨겁고, 기분이 묘연하다.

부드러운 깃털 하나가 마치 제 가슴 한쪽을 후비고, 간질이고, 쓰다듬는 것만 같아 가슴을 두들긴다. 자꾸만 쿵, 쿵, 제가 두드려 나는 소리인지, 심장이 덜컥이며 내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