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11

엘리스.aliceeli 2016. 4. 28. 20:53

[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11

체교과 조교 주은찬 x 기계체조하는 가람이 ts
*설정날조 주의!



11



가람이 몸을 담고 있는 중앙체육관에 대해 이제 와 설명을 해보자면, 지하로 1층, 지상으로 2층밖에 되지 않는 건물로 층수만 따져보면 교내에 있는 그 어느 건물보다도 적은 층을 가졌지만 한 층의 높이가 보통 건물들과 달리 평균적으로 2배에 달하는 높이를 지니고 있었다. 층에 비례하는 면적만 따져본다면 교내에서 1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널찍하고, 높았다.

가람은 보통 지상 2층에 있는 소체육관에서 연습을 하는데, 한 층이 통으로 연결된 구조인 1층 대체육관에는 사람이 언제나 바글바글 넘실거렸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소체육관은 365일 바닥에 매트가 깔린 탓에 언제부턴가 체조부 전용 연습실이 되었던 사유도 한몫했다.

은찬은 평소처럼 2층에 위치한 소체육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작 한층 밖에 되지 않는데 엘리베이터는 타는 일도 무색해 계단을 오른다. 높이가 높이니만큼 계단을 다 오를 즘에는 턱까지 숨이 차오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의 배가 크게 부풀었다가 줄어든다. 목울대 역시 숨을 꿀꺽이는 탓에 거침없이 오르내렸다.

숨 고름 후에 가슴의 출렁임이 잠잠히 가라앉았을 때 그는 문을 열어젖혔다. 운동을 방해해버린 건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방해하는 건 연습이 아니라 그녀의 휴식인 듯했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연습 때면 질끈 동여매던 머리칼을 풀어헤치곤 매트 위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토끼같이 동그랗게 모은 몸을 옆으로 두어 웅크린 그녀는 배를 감싸 쥐고 있어 제 온몸을 제 팔로 안아주려는 듯 보인다. 작은 등줄기가 고운 능선으로 휘어져 있었다. 은찬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잠을 자고 있던 건 아닌 모양인지, 그가 충분히 그녀에게 시선을 던져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줄어들었을 때,

“뭐예요.”

그녀가 감았던 두 눈을 펼쳐 보이며 쌀쌀맞게 말했다. 땀에 젖은 목줄기를 따라 넝쿨처럼 휘어진 머리칼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뺨 위에도 갈빛 얼룩처럼 들러붙어 있다.

“연습 많이 했어요?”

은찬은 묻는다. 그녀는 여즉 몸을 웅크린 채로 또 날이 선 시선을 죽이지 않고,

“알 바 아니니까 꺼져요. 안 그래도 짜증 나니까.”

하고 말한다. 작고 더 작게 하나의 원이 되려는 걸까, 제 몸을 데구루루 더 말아 보인다. 쪼그라드는 그 몸을 보며 은찬은,

“이제 연습 끝난 거예요? 더 안 해요?”

“……”

“밥은 먹었어요? 굶은 건 아니죠?”

대답 없는 가람을 향해 말을 붙인다. 웅크린 그녀 바로 옆에 넉살 좋게 제 몸을 앉히기도 하면서 조잘거린다. 은찬의 목소리가 가람의 귓가로 떨어져 내린다. 간질이는 듯한 음성들이 귓바퀴에 들러붙었다가 흘러내려가며 이따금 그녀 미간에 앉아 주름을, 깨물린 탓에 허옇게 일어난 핏기 가신 입술멍울로 제 자리들을 나타내곤 하였다.

“진짜 그 놈의 밥! 알아서 먹으니까 꺼져요! 쫌!”

“정말 먹었어요?”

꼬투리를 잡았다. 파들거리는 입술 사이로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짓눌린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가람은 찌푸린 미간으로, 불만이 통통 튀는 목소리로, 짜증 섞인 새붉은 눈동자로,

“안 꺼지면 내가 꺼지죠.”

톡 쏘아붙이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강단졌던 말과 달리 몸은 느릿느릿하고 둔해 의도치 않게 은찬은 가람을 관찰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가느다란 몸줄기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온몸의 모든 선들이 발을 움직이는 작은 흔들림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움츠러들고, 후들거리고, 출렁거렸다. 오른팔로는 배를 가리고 있었는데 힘이 단단히 들어간 그 손은 제 허리를 꽉 쥐고 있어 손등에 푸르스름한 힘줄이 내비치기도 했다. 작고 달뜬 한숨이, 잇새로 스미던 신음을 혀 밑으로 짓누르는 목소리가 가람의 입술을 타고 얄팍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목덜미에 들러붙은 머리덩굴들은 출렁이는 몸짓에도 도무지 떨어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목 뒤로부터 시작된 넝쿨은 어느샌가 앞으로 줄기를 뻗어 쇄골과 어깨까지 장악하고 있다. 갈색 앞머리 밑으로 언뜻언뜻 고운 이마가 엿보이기도 했다.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지나치게도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스산하리만큼 창백한 뺨을 보다 은찬은,

“어디 아파요?”

하고 묻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어 신음을 막는다. 그녀의 몸이 휘청였다. 발목이 느슨해진 탓이었다. 은찬이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손바닥에 차오르는 그녀는 자그마했고, 땀으로 끈적했다.

“괜찮아요?”

“이거 놔요!”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많이 아파 보이는데.”

“필요 없어요!”

몸을 밀치는 아귀에 힘이 없었다. 그녀 깐에는 가슴팍을 세차게 밀친 거 같았는데 은찬이 휘청거리기보다는 제 몸이 힘을 잃는 바람에 매트 위로 미끄러질 뿐이었다. 은찬은 황급히 가람의 허리를 껴안아 제 품으로 당긴다.

뺨이 비벼진 가슴팍에 머리카락이 언뜻언뜻 제 넝쿨을 펼쳐낸다. 쥔 허리는 가늘었고, 덧붙여 붙잡은 손목도 제 손으로 감싸고도 손가락이 남아돌 정도로 가냘팠다. 옅은 땀 냄새가 난다. 더불어 약한 과일 향도. 샴푸 냄새일지도 모른다.

“으……”

가람은 작게 신음을 내뱉고 은찬은 한숨을 내쉰다.

“많이 아파 보이는데. 병원이 싫으면 의무실이라도 가요.”

“……”

“내가 데려다줄게요.”

은찬은 매트 위로 가람을 앉혔다. 설핏 가람의 입술이 열리며 소리를 내는 듯도 했으나 그는 대답을 듣지 않은 채로 묵묵히 그녀의 손앞에 운동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운동화 속에 넣어두었던 양말을 꺼내 신고 운동화에 발을 끼웠다. 리본 모양으로 운동화를 묶는 손가락이 제자리서 멈춘 초침처럼 자꾸만 덜덜거렸지만, 그는 나서지 않는다. 선을 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