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8

엘리스.aliceeli 2016. 4. 8. 21:30

[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6

체교과 조교 주은찬 기계체조하는 가람이 ts

*설정날조 주의!


8

 

 

오히려 일은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

길고양이한테 적선하라고 했더니 정말로 주고 있네요?”

은찬은 말을 잊은 채 황망히 제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고 며칠 새 지켜봤다고 제 것인 양 눈에 낯익은 검은 운동화가 제일 첫 번째였고, 그 위로 시선을 쭉쭉 뻗어 올려 보이자 가람의 얼굴이 닿았다.

…….”

금요일 정오, 콩알만 한 새순이 돋은 나뭇가지를 때리는 햇볕이 따사로웠다. 밋밋한 연녹색 나뭇잎이 한층 싱그러워 보인다. 햇빛은 보도블럭은 물론이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자갈 따위에도 원 없이 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눈앞이 쨍했다. 온몸이 찜통에 오른 듯 따끈따끈히 데워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문턱이 닳도록 조교실을 제 안방마냥 드나들던 건은 오늘따라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보니 이미 선수 쳐 밥을 먹었고 귀갓길 통행버스에 몸을 실은 지 오래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로 인해 은찬은 홀로 점심을 때워야 했는데 나가서 사 먹자니 몸을 움직이기 귀찮았고, 굶자 다짐하니 급격히 허기가 몰려왔다.

금요일이니만큼 점심은 적당히 해치우고 저녁에 거하게 차려 먹자는 생각으로 대정문 앞까지 걸어가 도시락 하나 사 올라오던 길에 그는 따가운 볕을 느꼈다. 어차피 돌아가 봐야 모니터와 겸상할 처지였다. 그는 가까운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기로 정했다. 평소라면 털끝도 안 내비치던 고양이 한 마리가 제 발치로 다가왔기에 생선튀김 하나를 던져주던 차였고, 때마침 그녀가 나타났다.

뜻밖의 등장에 은찬이 잠시 말을 잊고 할 말을 찾아 부산스레 제 머리를 굴리던 차에 그녀가 쌀쌀맞게 말했다.

사람 먹는 거 고양이한테 주면 죽어요.”

과장된 비약이었다.

줘야 될 걸 줘야죠.”

내리깐 시선이 제법 싸했다. 그녀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길에도 고양이는 꼬리를 가지런히 바닥에 내린 채 그가 던져준 튀김의 겉을 핥고 있었다.

그럼 고양이한테는 뭘 줘야 해요?”

은찬이 묻는다. 갑작스런 그 질문에 줄곧 고양이에게 박아대던 시선을 뽑아낸 그녀는 당황한 듯도 보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그것까지 내가 일일이 말해줘야 해요? 그 정도는 스스로 찾아봐요. 고양이 예뻐하는 건 그쪽이니까.”

샐쭉하니 말한다.

아니면 고양이한테 물어보던가.”

덧이어 퉁명스럽게 중얼거린다. 새침한 그 얼굴을 은찬은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가람이 고개를 든 탓에 눈싸움하듯 시선이 이어졌다. 미간이 구겨진 새초롬한 그녀와 넉넉하게 뺨이 풀어져 나긋한 얼굴의 그가 볕 아래 있었다. 문득,

그럼 가람 씨는요?”

그가 입을 열었는데 그녀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반문하듯 치켜 올라가는 눈썹과 찌푸려진 눈살을 보며,

뭘 줘야 해요?”

하고 은찬이 다시금 말을 보충해가며 물었다. 그녀는 혀를 찼다.

난 필요 없어요.”

맺어지는 대답에 그는,

왜요?”

하고 천연한 얼굴로 묻는다. 그 덕에 벌어지는 잠깐의 틈.

고양이 따위가 아니니까.”

소리를 따라 벌어지는 가람의 입술을 은찬은 두 눈을 끔뻑끔뻑하며 지켜본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집요히 제 얼굴을 쑤셔오는 그 시선에 아주 약간 그녀의 뺨이 연붉어졌던 듯도 했다.

기다려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은찬은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별안간 떨어진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꽤 거친 발걸음을 놀려대고 있었는데 그녀에 비해 긴 다리를 지닌 그로서는 따라잡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늘은 연습 안 해요?”

……

안 해요? ? 밥은 먹었어요?”

정말 시끄럽네!”

앵무새처럼 쉼 없이 재잘거리며 제 곁을 웅웅대는 그의 목소리에 별안간 가람이 소리를 쨍! 하니 질렀다. 덕분에 걸음을 멈춘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 본 모양을 갖췄다. 여유로운 은찬의 면전을 향해,

그놈의 밥!”

하고 가람이 세차게 말한다.

먹어주면 꺼질 거예요?”

화를 내는 듯도 보였으나 당황스런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고 은찬은,

역시 안 먹었구나. 같이 먹어요.”

능글맞게 웃는다. 가람은 헛웃음을 치며 그의 대답을 채근한다.

그럼 꺼질 거냐구요.”

글쎄요? 먹는 거 봐서?”

장난스레 농치듯 말을 건네며 베실베실 웃는 그를 보던 가람의 얼굴에 울긋불긋한 물이 들었다. 벌건 염료가 물든 듯 불긋한 얼굴로 가람은 홱 하니 고개를 달리하고 도망치듯 은찬의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어디 가요.”

밥 먹자면서요.”

가람이 은찬 들으라는 듯, 화다닥 말을 허공에 흩뿌렸다. 귓바퀴가 새빨갰다. 은찬은 실실 웃으며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팽개치듯 내던졌다.

같이 가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