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8
[은찬가람ts/찬가람ts] 로맨스를 부탁해 6
체교과 조교 주은찬 x 기계체조하는 가람이 ts
*설정날조 주의!
8
오히려 일은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
“길고양이한테 적선하라고 했더니 정말로 주고 있네요?”
은찬은 말을 잊은 채 황망히 제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고 며칠 새 지켜봤다고 제 것인 양 눈에 낯익은 검은 운동화가 제일 첫 번째였고, 그 위로 시선을 쭉쭉 뻗어 올려 보이자 가람의 얼굴이 닿았다.
“네…….”
금요일 정오, 콩알만 한 새순이 돋은 나뭇가지를 때리는 햇볕이 따사로웠다. 밋밋한 연녹색 나뭇잎이 한층 싱그러워 보인다. 햇빛은 보도블럭은 물론이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자갈 따위에도 원 없이 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눈앞이 쨍했다. 온몸이 찜통에 오른 듯 따끈따끈히 데워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문턱이 닳도록 조교실을 제 안방마냥 드나들던 건은 오늘따라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보니 이미 선수 쳐 밥을 먹었고 귀갓길 통행버스에 몸을 실은 지 오래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로 인해 은찬은 홀로 점심을 때워야 했는데 나가서 사 먹자니 몸을 움직이기 귀찮았고, 굶자 다짐하니 급격히 허기가 몰려왔다.
금요일이니만큼 점심은 적당히 해치우고 저녁에 거하게 차려 먹자는 생각으로 대정문 앞까지 걸어가 도시락 하나 사 올라오던 길에 그는 따가운 볕을 느꼈다. 어차피 돌아가 봐야 모니터와 겸상할 처지였다. 그는 가까운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기로 정했다. 평소라면 털끝도 안 내비치던 고양이 한 마리가 제 발치로 다가왔기에 생선튀김 하나를 던져주던 차였고, 때마침 그녀가 나타났다.
뜻밖의 등장에 은찬이 잠시 말을 잊고 할 말을 찾아 부산스레 제 머리를 굴리던 차에 그녀가 쌀쌀맞게 말했다.
“사람 먹는 거 고양이한테 주면 죽어요.”
과장된 비약이었다.
“줘야 될 걸 줘야죠.”
내리깐 시선이 제법 싸했다. 그녀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길에도 고양이는 꼬리를 가지런히 바닥에 내린 채 그가 던져준 튀김의 겉을 핥고 있었다.
“그럼 고양이한테는 뭘 줘야 해요?”
은찬이 묻는다. 갑작스런 그 질문에 줄곧 고양이에게 박아대던 시선을 뽑아낸 그녀는 당황한 듯도 보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그것까지 내가 일일이 말해줘야 해요? 그 정도는 스스로 찾아봐요. 고양이 예뻐하는 건 그쪽이니까.”
샐쭉하니 말한다.
“아니면 고양이한테 물어보던가.”
덧이어 퉁명스럽게 중얼거린다. 새침한 그 얼굴을 은찬은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가람이 고개를 든 탓에 눈싸움하듯 시선이 이어졌다. 미간이 구겨진 새초롬한 그녀와 넉넉하게 뺨이 풀어져 나긋한 얼굴의 그가 볕 아래 있었다. 문득,
“그럼 가람 씨는요?”
그가 입을 열었는데 그녀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반문하듯 치켜 올라가는 눈썹과 찌푸려진 눈살을 보며,
“뭘 줘야 해요?”
하고 은찬이 다시금 말을 보충해가며 물었다. 그녀는 혀를 찼다.
“난 필요 없어요.”
맺어지는 대답에 그는,
“왜요?”
하고 천연한 얼굴로 묻는다. 그 덕에 벌어지는 잠깐의 틈.
“고양이 따위가 아니니까.”
소리를 따라 벌어지는 가람의 입술을 은찬은 두 눈을 끔뻑끔뻑하며 지켜본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집요히 제 얼굴을 쑤셔오는 그 시선에 아주 약간 그녀의 뺨이 연붉어졌던 듯도 했다.
“기다려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은찬은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별안간 떨어진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꽤 거친 발걸음을 놀려대고 있었는데 그녀에 비해 긴 다리를 지닌 그로서는 따라잡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늘은 연습 안 해요?”
“……”
“안 해요? 응? 밥은 먹었어요?”
“정말 시끄럽네!”
앵무새처럼 쉼 없이 재잘거리며 제 곁을 웅웅대는 그의 목소리에 별안간 가람이 소리를 쨍! 하니 질렀다. 덕분에 걸음을 멈춘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 본 모양을 갖췄다. 여유로운 은찬의 면전을 향해,
“그놈의 밥!”
하고 가람이 세차게 말한다.
“먹어주면 꺼질 거예요?”
화를 내는 듯도 보였으나 당황스런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고 은찬은,
“역시 안 먹었구나. 같이 먹어요.”
능글맞게 웃는다. 가람은 헛웃음을 치며 그의 대답을 채근한다.
“그럼 꺼질 거냐구요.”
“글쎄요? 먹는 거 봐서?”
장난스레 농치듯 말을 건네며 베실베실 웃는 그를 보던 가람의 얼굴에 울긋불긋한 물이 들었다. 벌건 염료가 물든 듯 불긋한 얼굴로 가람은 홱 하니 고개를 달리하고 도망치듯 은찬의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어디 가요.”
“밥 먹자면서요.”
가람이 은찬 들으라는 듯, 화다닥 말을 허공에 흩뿌렸다. 귓바퀴가 새빨갰다. 은찬은 실실 웃으며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팽개치듯 내던졌다.
“같이 가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