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은찬가람/찬가람] 우리 사귀자 2

엘리스.aliceeli 2015. 6. 26. 23:57

 [은찬가람/찬가람] 우리 사귀자

*au 설정 주의

*평범한 학생물이 보고 싶어서 쓴 찬가람.




복도청소 총 일곱 번, 그중에 3번을 주은찬과 함께 했다. 청가람은 왼편, 주은찬은 오른쪽. ㄷ자로 꺾이는 학교건물 가운데 통로를 나란히 오가며 우리는 그렇게 청소를 했다.

처음으로 같이 청소를 하던 날, 손바닥이 저릿하고, 새빨갛게 틀 정도로 박박 힘을 주어 문지르는 가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은찬은 그저 걸레를 끌며 앞뒤로 술렁술렁 걸음만 옮겼을 뿐이다. 찌걱이는 발소리를 내가며 분주히.

청소한다기보단 시늉에 가까운 몸짓으로. 제대로 물기를 짜내지 않은 물걸레에선 줄줄 물이 흐르고, 대걸레를 미는 방향을 고려치 않은 덕에 바닥이 깨끗해지긴커녕 검은 발자국이 촘촘히 매워진다. 바닥을 닦는 게 아니라 사실을 신발 밑창을 닦을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더럽게 질척이는 바닥과 달리 슬쩍 엿본 실내화 밑창은 반들반들하니 윤이 나고 있었다. 실상은 걸레 물에 젖어 회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기에 실내화 바닥을 닦을 생각이었다면 그것조차 꽝인 셈이었다.

"바닥이 더 더러워지잖아."

보다 못한 가람이 성을 내자 은찬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눈을 마주쳐온다. 마치 살짝 열린 문틈을 빼꼼히 엿보듯 새침한 동작이었다.

"바닥이 더 더러워진다고. 할 거면 제대로 해."

"어…"

"뒤로 가면서 닦던가. 발자국 다시 다 생기잖아."

퉁명하니 핀잔을 주며 가람은 다시 바삐 손을 움직인다.

"뭘 멍청하게 보고 있어."

"아니, 생각보다 열심히 하는구나~싶어서?"

"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청소나 해."

가람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레질을 멈춘 손은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걸레 봉에 턱을 괸 채로 뚫어져라 저를 바라보고 있는 통에 자꾸만 의도치 않게 눈이 마주친다. 부러 몇 번의 어긋난 시선이 공기 중에서 얽혔다 떨어져 나갔다. 제 등에 꽂히는 눈동자 한 쌍이 못내 부담스러웠기에 가람은 시선을 등 진 채로 바삐 손을 놀렸다. 서둘러 끝내버리고 돌아가야지 하는 심산이었다.

급히 몰아치듯 힘을 쥐어 봉을 꽉 쥐었던 탓인지 손바닥이 아렸다. 가람은 아픔을 달랠 요량으로 교복 바지에 손바닥을 쓱쓱 문댄다. 깨끗해진 복도를 바라보는 눈동자엔 '그럼 그렇지'하는 의기양양이 반, 흐뭇함이 반 실려 있었다. 콧방귀 치는 표정으로 가람은 누군가 새로이 38선을 그어놓기로도 한 듯 좌우로 나뉜 제 깨끗한 바닥과 얼룩투성이인 은찬의 바닥을 바라보았다.

"난 다 했으니까 간다."

"같이 가!"

"넌 청소 덜 했잖아."

"난 아까 다 끝냈어."

검은 구정물을 보며 가람이 미간에 주름을 그려 넣었지만, 반박할 새도 없이 은찬은 자연스럽게 가람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어느샌가 은찬의 반대편 손에는 대걸레 두 짝이 들려있었다.

손목이 붙들린 채로 그렇게 교무실로 끌려들어 갔다. 아까 있는 여유 없는 여유 다 끌어다가 부리며 신선놀음하더니 갑자기 왜 이리 서두르나 의문이 드는 몸짓이었다. 교무실로 오기 전 아주 작살을 낼 기세로 화장실 청소 칸에 걸레를 내던지질 않나. 내팽개쳐진 걸레가 형편없는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뒹굴었다. 주워서 바르게 정리한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주은찬은 가람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화장실에 걸레를 두고 교무실 문을 열어젖히기까지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은 듯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번뜩이는 순발력을 닮은 모양새로 은찬은 신속히 선생님의 뒤통수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 덕에 붙들린 손목 쪽 가람의 어깨도 들썩였다.

"선생님, 청소 다 했어요."

예의 능글맞고 사람 좋아 보이는 웃는 낯을 걸치며 주은찬은 말했다. 바삐 발놀려 도착한 사람치고는 여유 있는 몸짓으로 하하호호 흥감스레 웃어가며 수다를 늘어놓기 바빠 보였다. 가람은 그 옆에서 이맛살을 구기며 한참이나 영양가 없는 수다를 감상하다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었다. 마치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침을 뱉듯 무심한 태도로 툭 하니.

"이제 집에 가도 되죠?"

있는 산통이란 산통은 다 깨어 부순 모양인지, 갑작스러운 가람의 목소리에 은찬과 선생 두 사람의 활기찬 대화는 달아나버렸다. 흥미가 식은 얼굴로 선생은 손을 팔랑였고, 그 신호를 낚아채듯 받아든 가람은 고개를 한 번 까딱이는 인사로 거침없이 교무실 밖으로 발을 놀렸다.

"같이 가."

또다시 은찬의 목소리가 제 뒤를 쫄래 쫄래 쫓아온다. 저러다 제풀에 지쳐 나가겠지, 싶었는데 교실에 돌아와서도,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으로 향할 때도, 학교 앞 문방구를 지나칠 때까지도 끈질기게 들러붙어 오고 있었다. 설상가상 교실 안에서는 갑자기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다가와 거철할 의사를 펼칠 새도 없이 순식간에 가방을 낚아채는 바람에 가방을 빼앗기고 말았다. 돌려받지도 못한 채 그대로 가람은 은찬의 뒤를 밟아 교실을 빠져나왔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은찬을 보며 가람은 다시금 이맛살만을 찌푸렸다.

뭐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단 일분만이라도 좀 조용히 닥치고 있을 순 없는 걸까. 자꾸만 귓바퀴 쏙으로 파고들어 주렁주렁 맺히는 음성이 거슬려 가람은 연신 이맛살을 찌푸리며 홀로 분을 삭이고 있었다. 이윽고 빨간 신호등 불 앞에 섰을 때, 듣다 못 한 가람이 날카롭게 말을 토해내었다.

"그 입 좀 다물 순 없어?"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참다 참다 내뱉은 가람의 짜증에 은찬은 엉망진창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싫어. 가람은 단칼에 거절한다. 그러지 말고, 내가 사줄게. 제 거절에도 거리낌 없이 넉살 좋게 받아치며 문방구로 향한다. 이대로 혼자 돌아가 버릴까 했지만 주은찬의 앞 몸통에 걸린 제 가방을 떠올리며 가람은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차라리 저 입에 뭐라도 물려두면 조용하겠지, 스스로를 위로해 보이며.

"자, 딸기 맛 괜찮아?"

"됐거든. 너나 먹어."

제 말은 귓등으로도 처 듣질 않는다. 멍청한 건지, 귀머거리인 척을 하는 것인지, 안 먹겠다는 제 말은 싹 무시한 채로 아이스크림의 포장까지 벗겨내 제 손에 쥐여준다. 얍실한 웃음을 지어가며 '맛있어 먹어' 하고 발랄하게 말하기까지 했다.

"안 먹는다고 했잖아."

"이미 사버렸잖아. 안 먹으면 녹아."

"그럼 니가 두 개 다 처먹으면 되겠네."

"혼자 먹으면 맛이 없어서 그래. 니가 좀 같이 먹어주라."

더 이상 낼 화도, 기운도 없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가람은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손가락에 적셔온다. 끈적거리는 이물감에 가람은 다시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것도 저것도 다 짜증이 났다. 어쩜 이렇게 제멋대로냐 싶어 다시 한 번 마른 한숨을 토해내 본다. 소음에 시달린 탓에 머리가 격렬한 통증을 호소해오고 있었다. 그 찌근거리는 지독한 통증을 느끼며 가람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맛은, 달았다.

"맛있지?"

다시 한 번 주은찬이 얄궂게 웃고 있었다. 가람은 묵묵히 그 단 덩어리를 목 뒤로 삼켜내었다. 지독히도 달았다.